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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상설전시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서부경남의 역사문화를 한눈에 역사문화홀

역사문화홀은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편안히 느껴보는 문화휴식공간입니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와 각종 역사 도서, 휴식의 공간을
복합 구성하였습니다.

1부 다도해와 남강에서 삶을 찾다 서부경남의 선사시대​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서부경남의 유물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각지에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였고, 흙을 빚고 돌을 갈아 각종 도구와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토기를 만들어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서부경남의 신석기시대​

서부경남의 남해안 지역은 다양한 어패류와 해산물이 풍부하여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많은 유적이 형성되었습니다. 다도해 일대의 수 많은 패총유적이 이를 증명합니다. 최근에는 진주 평거동과 같은 내륙에서도 유적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 융기문토기 隆起文土器
Raised Design Pottery
부산 동삼동 출토
신석기시대

토기면에 점토띠를 덧붙여 문양효과를 준 것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이다. 문양은 주로 아가리를 따라 수평으로 한 줄 혹은 여러 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표현되며, 거치문, 삼각집선, 평행사선 등의 문양을 넣기도 한다. 덧무늬토기는 부산 동삼동, 울주 신암리, 양양 오산리, 통영 연대도ㆍ욕지도, 여수 돌산 송도 유적 등 동해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에서 확인된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즐문토기 櫛文土器
Comb-pattern Pottery
진주 평거동 출토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넓은 의미로는 신석기시대 모든 토기를 지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선이나 점 등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한 토기를 가리킨다. 빗살무늬토기는 기면에 빗 같은 도구로 찍거나 그어서 만든 점, 선, 원 등의 무늬를 장식한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용도와 기능에 따라 발형, 옹형, 고배형, 접시형, 깔때기형, 귀때형 토기 등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발형토기는 음식을 끊이거나 보관 용도로, 목이 있는 항아리는 저장용으로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00~1000년에 시작됩니다. 빗살무늬토기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토기와 석기가 등장하고 농경기술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들어섭니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무덤 축조 전통을 정착시키고, 청동기라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술로 만든 도구를 제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시설을 갖춘 마을이 생겨나며, 마을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고 여러 마을을 통합할 수 있는 유력자나 집단도 등장하였습니다.

청동기시대 진주의 중심, 대평유적​

특히, 진주의 대평 유적에서는 대규모 농경지와 함께 환호 등의 방어시설, 석기ㆍ옥제품 등을 만드는 생산시설이 발굴됨에 따라 당시 한반도 남부의 중심 취락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Bronze Age
  • 새김 돋은띠무늬 토기
    청동기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토기 새김 돋은띠무늬 토기 진주 대평리 출토

    청동기시대의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토기이다. 토기의 외면에 점토 띠를 붙이고 그 위에 도구로서 빗금무늬 또는 찍은무늬 등을 새겼다. 문양 대신에 두 손가락으로 점토 띠를 어긋나게 비틀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점토 띠의 단면 형태는 삼각형, 사다리꼴, 반원형 등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기면전체에 돌려지는 형태지만 3~4개로 분리되어 붙는 것도 있다.

  • 구멍무늬 토기
    이른시기 청동기의 대표적 토기 구멍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Perforated-rim Pottery​
    공열문토기 孔列文土器​
    진주 대평리 출토​
    청동기시대​

    아가리 아래에 원무늬를 연속하여 새긴 토기이다. 골아가리무늬(구순각목문)가 새겨진 토기와 함께 역삼동식토기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에서는 팽이모양토기의 주 분포지인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출토되며, 한반도 동북지역의 토기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 가지무늬토기
    청동기인들의 명품토기​ 가지무늬토기 가지무늬 토기 Pottery with Eggplant Design​​
    채문토기ㆍ채도 彩文土器ㆍ彩陶​
    진주 대평리 출토, 최규진 기증​
    청동기시대​​

    토기의 어깨부분에 가지무늬가 새겨진 토기이다. 두께가 얇고 고운 바탕흙을 사용하여 표면을 곱게 손질한다. 집자리에서도 일부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는 의례용기로 알려져 있다. 가지무늬는 가마에 넣고 구운 뒤 가열된 토기의 표면에 유기물질을 붙이거나 목탄막대기 등으로 문질러 탄소를 흡착시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 붉은간토기
    청동기인들의 명품토기​ 붉은간토기 붉은간토기 Red Burnished Pottery​​​
    적색마연토기ㆍ홍도 赤色磨硏土器ㆍ紅陶​
    진주 상촌리, 평거동 출토​
    청동기시대​​​

    점토로 토기를 쌓아올린 다음,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 문질러 구운 토기이다. 산화철은 구워지는 과정에서 붉은색으로 변화되고, 토기의 표면을 갈면 광택이 난다. 붉은간토기는 무덤의 껴묻거리(부장품)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 의례용기로 알려져 있다.

2부 동아시아 지중해의 진주 변한과 가야​

바다를 통한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지, 변한과 가야의 다채롭고 특색 있는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삼한시대와 서부경남​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에 따르면 삼한시대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과 그에 속한 수십개의 소국이 있었는데, 서부경남에는 변한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2개국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변한은 뛰어난 제철과 항해기술을 보유하고 낙랑•대방에서 일본 규슈지역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당시 한•중•일 동아시아 교류체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천년전 국제무역항 사천늑도유적

사천늑도는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섬전체에 대규모의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수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패총과 무덤, 주거지 등의 유구와 함께, 다양한 국적의 토기류(중국계 경질토기, 일본계 야요이토기, 한반도 점토대 토기 등)를 비롯하여, 중국의 화폐인 반량전, 오수전과 중국거울, 청동화살촉 등 약 13,000여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섬 전체에 가득찬 유적과 다국적의 유물들은 2000여 년 전 사천늑도가 고대 동아시아지역 문화의 중심·기착지로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Samhan Period
  • 삼한시대를 대표하다 덧띠 토기
    삼한시대를 대표하다 덧띠 토기 덧띠 토기 Attached-rim Pottery​​​​​​
    점토대토기 粘土帶土器​
    사천 늑도 출토​​​
    삼한

    아가리에 점토 띠를 덧댄 토기이다. 점토대토기는 점토 띠의 단면 형태에 따라 크게 원형과 삼각형으로 나뉘는데, 원형점토대토기에서 삼각형점토대토기로 변화한다. 사천 방지리와 늑도 유적이 대표적이다. 점토대토기와 함께 잔무늬 거울, 가지방울 등 다양한 청동기로 대표되는 한국식 동검문화가 형성되고 철기가 등장한다. 이와 같은 점토대토기문화를 기반으로 진한, 변한, 마한의 삼한 사회가 성장하고, 나아가 신라, 가야, 백제로 발전하게 된다.

  • 삼한시대를 대표하다 주머니모양 항아리
    삼한시대를 대표하다 주머니모양 항아리 주머니모양 항아리 Pocket type Jar​​​​
    주머니호 袋狀壺​
    진주 창촌리 출토​
    삼한​​​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와 함께 원삼국시대 초기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토기로 널무덤에 주로 부장된다. 짧게 벌어지는 아가리와 불룩한 배를 가진 작은 주머니모양의 항아리 형태이다. 일반적으로는 덧띠 토기에서 변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회백색인데 비하여, 이 항아리는 균일하게 검은 칠을 하고 정성스레 마연된 것이 눈에 띤다. 실생활에 사용하기보다는 무덤의 껴묻거리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 가지무늬토기
    삼한시대를 대표하다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Jar with Horn-shaped Handles​​​​​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
    진주 창촌리 출토​​
    삼한

    주머니호와 함께 원삼국시대 초기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토기인 와질토기의 한 기종이다. 목이 길고 둥근 몸체에 쇠뿔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회백색인데 비하여, 이 항아리는 균일하게 검은 칠을 하고 정성스레 마연된 것이 눈에 띤다.

가야는 어떤 나라인가?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 낙동강 서쪽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나라입니다.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고성의 소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 가야가 다양한 문화를 구가했습니다. ​

서부경남의 가야​

서부경남지역은 5세기경인 후기가야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가야의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고성ㆍ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소가야는 남해안연안에 국제적인 해상 교역망을 형성하고 영호남 내륙을 연결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령을 중심으로 성립한 후기 가야연명체의 맹주인 대가야는 6세기 초 가야 북부와 호남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통괄하며 초기 고대국가를 형성하기도 하였으나 562년 멸망하였습니다.

Three Kingdoms Period
  • 영혼을 운반하다​
    영혼을 운반하다​ 도기바퀴장식뿔잔 Pottery vessel with chariot wheels​​​​
    차륜식토기 車輪飾土器​
    보물​​
    최규진 기증​
    삼국​​​

    창이 뚫린 굽다리 위에 마치 뿔잔 두 개를 서로 붙여 놓은 듯한 모양의 원통관을 올려놓았다. 원통관의 양쪽에는 바퀴를 하나씩 매달았다. 원통관 위에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아래쪽으로 말려진 고사리 모양의 장식 세 개를 붙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토기에 부착된 바퀴는 수레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이 토기와 함께 묻혔던 사람의 영혼을 저승세계로 운반하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 Made in 대가야 원통모양 그릇 받침
    Made in 대가야 원통모양 그릇 받침 원통모양 그릇 받침 Cylinder-shaped Vessel Stand​​​​​
    통형기대 筒形器臺​
    합천 옥전, 진주 옥봉ㆍ수정봉 출토​​​
    삼국​​​​

    대가야양식의 원통모양 그릇 받침이다. 가야 토기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 등 정치체 마다​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발전하였다. 나아가 정치세력들 사이의 영역 변화와 함께 지역 양식의 분포 범위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토기는​ 대가야의 전형적인 형태의 그릇 받침이다.

  • 용과 봉을 품은 고대인의 보검 고리자루 큰칼
    용과 봉을 품은 고대인의 보검 고리자루 큰칼 고리자루 큰칼 Sword with Ring Pommel​​​​​
    환두대도 環頭大刀​
    창녕 교동 출토​​​
    삼국​​​

    칼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를 붙이고 그 속에 각종 장식을 넣은 칼로, 가야와 신라의 대형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고리자루 큰칼은 소유자의 정치적인 지위나 신분을 드러내주는 위세품(威勢品)이기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 없었다. 또한 지방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중앙에서 각 지방 수장에게 내리는 하사품이기도 하였다.

  • 가야의 제사장 집단의 안녕을 빌다 사람머리모양 토기
    가야의 제사장 집단의 안녕을 빌다 사람머리모양 토기 사람머리모양 토기 Human Head-shaped Pottery ​​​​​​
    인두형토기 人頭形土器​
    진주 중천리 출토​​​​
    삼국​​​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된 사람머리모양 토기이다. 마치 그리스의 투구를 닮은 이 토제품은 5세기 무렵 가야의 것으로 추정되며 직경 약 24cm로 실제 사람이 쓸 수 있는 크기이다. 전체 모습을 복원 한다면 깃털을 꽂고 각종 꾸미개를 장식한 흙 투구를 연상할 수 있으며, 그 흙 투구를 쓰고 의례를 집전했던 제사장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 가야인의 멋 금귀걸이
    가야인의 멋 금귀걸이 금 귀걸이 Gold Earrings​ ​​​​​​
    금제이식 金製耳飾​
    진주 중안동, 창녕 교동 출토​​​​​
    삼국​​​

    귀걸이는 선사시대부터 꾸준히 사용되어 온 장신구의 하나이다. 금속문화의 도입과 함께 천하석, 수정, 호박 등에서 금, 금동, 은으로 소재가 바뀌어 다양한 형태의 금속제 귀걸이가 유행하였다. 특히 금으로 제작된 귀걸이가 가장 많고 장식미가 뛰어나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 가야인의 멋 옥 목걸이
    가야인의 멋 옥 목걸이 옥 목걸이 Jade Necklace​​ ​​​​​​
    옥제경식 玉製頸飾​
    진주 중안동, 고성 내산리, 합천 옥전 출토​​​​​​
    삼국​​​

    화려한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그것을 착용한 사람의 정치ㆍ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성행하지만 그 이전의 삼한 사람들도 수정, 호박, 마노, 옥, 유리 등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3부 불국토의 실현​통일신라와 고려​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통일신라와 고려의 화려하고 세련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불심으로 대동단결

가야를 통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와의 연이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통일을 완성하고 삼국의 백성을 통합하였습니다. 통일된 신라는 이질적인 문화를 통합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이 시기 불교는 통일 국가를 이끄는 사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 불교 최고의 고승이라 불리는 원효와 의상 등을 배출하였습니다. 통일신라 초기에는 교종 중심이었으나 9세기 극심한 왕위쟁탈전으로 사회가 점차 혼란해지자 선불교가 전래되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이 형성되었습니다.

해인사 이미지
부처님과 함께한 서부경남

서부경남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도 이 시기 불교와 관련된 유적과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인사 묘길상탑,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비롯하여 창녕 말흘리 유적 등이 있습니다.

500여점의 금속공예품말흘리 유적의 비밀

말흘리 유적 출토품들은 대부분 구덩이 안 철솥안에 차곡차곡 포개져 출토되었다.
왜 이렇게 출토되었을까?
말흘리 유적이 절로 운영되었던 시기는 나말여초기로, 도적과 반란이 들끓던 혼란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귀중한 물품들이었던 사찰용품들은 구덩이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말흘리 유적​

창녕 화왕산의 말흘리 유적은 통일신라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특히 1호 건물터
남서쪽 모서리의 구덩이 안에서 500여 점의 금동제품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불단을 장식하거나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사찰용품이었다. 100여 점의 화려한 금동장식판은 꽃모양을 비롯하여 오각형, 장방형,
원형 등 다양한 형태이다. 70여 점의 금동장식구와 128점의 금빛을 발하는 금속공예품들은 통일신라시대
말흘리유적의 화려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 장식판
    장식판
    금동장식판 金銅裝飾板​​​​
    Ornamental Plaque​
  • 금동장식판
    장식판
    금동장식판 金銅裝飾板​​​​​​
    Decorative plate
  • 향로
    향로
    향로 香爐​​​
    Incense Burner​​
  • 구슬
    구슬
    금동구 金銅球​​​
    Ball​​
  • 용이 새겨진 자물쇠
    용이 새겨진 자물쇠
    금동건 金銅鍵​
    Lock with Engraving of the Dragon​​​
  • 금강역사상이 조각된 자물쇠
    금강역사상이 조각된 자물쇠
    금동쇄 金銅鎖​
    Lock with Inscription of the Buddhisy Guardian Holding a Vajra​
  • 짐승 얼굴이 새겨진 문고리 장식
    짐승 얼굴이 새겨진 문고리 장식
    금동포수 金銅鋪首
    Doorpull with Beast Design​​
  • 풍탁
    풍탁
    금동풍탁 金銅風鐸​
    Wind Bell​​
부처님의 나라 고려​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불법의 숭상을 강조하였듯이 고려시대에는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사람이 불교를 자신들의 믿음으로 삼았고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불교 행사가 거국적으로 치러졌습니다. 거란과 몽골 등이 침략하여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도 불교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대장경을 판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세련된 사찰 출토 문화재​

경남 지역에서도 진주 남성리 및 밀양 영원사지 출토 문화재, 하동 출토 청자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들을 통해 고려인의 세련된 미의식과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Goryeo Dynasty
  • 진주 남성리 출토 불교 문화재​
    진주 남성리 출토 불교 문화재​ Excavation from the Remains in Namseong-ri, Jinju​​​​
    진주 남성리 출토품 晉州南星里出土品​
    고려시대​​​

    1995년 진주 명석면 남성리에서 경자磬子, 금강저金剛杵, 금강령金剛鈴 등 청동으로 제작한 불교의식용 도구가 발견되었다. 특히 경자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180년 진주에 향리직으로 있던 ‘장흥사長興寺’에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합천 영암사

영암사는 가야산과 지리산의 중간지점에 있는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영암사라는 절 이름에 대한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전하는 적연국사자광탑비寂然國師慈光塔碑(1023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 적연선사가 입적한 1014년(현종 5년) 이전에 이 절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Goryeo Dynasty
  • 항아리
    천년의 숨결, 영암사

    이 절터에는 건물터와 3층 석탑, 쌍사자석등, 귀부龜趺, 석조石槽, 기단, 계단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1984년 발굴조사 때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편, 토기편, 금동여래입상 등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절터에서 발견된 항아리, 사발, 접시는 당시 사찰에서 불교의식 등에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된다.

  • Made in 대가야 원통모양 그릇 받침
    천년의 숨결, 영암사

    이 절터에는 건물터와 3층 석탑, 쌍사자석등, 귀부龜趺, 석조石槽, 기단, 계단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1984년 발굴조사 때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편, 토기편, 금동여래입상 등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절터에서 발견된 항아리, 사발, 접시는 당시 사찰에서 불교의식 등에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된다.

  • 용과 봉을 품은 고대인의 엑스칼리버 고리자루 큰칼
    천년의 숨결, 영암사

    이 절터에는 건물터와 3층 석탑, 쌍사자석등, 귀부龜趺, 석조石槽, 기단, 계단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1984년 발굴조사 때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편, 토기편, 금동여래입상 등이 발견되었다. 이밖에 절터에서 발견된 항아리, 사발, 접시는 당시 사찰에서 불교의식 등에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밀양 영원사

밀양 영원사는 고려 충선왕의 왕사였던 보감국사寶鑑國師 혼구混丘(1251~1322)가 거처했던 사찰로 유명한데, 창건과 폐사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 영원사터에는 보감국사의 승탑과 부도, 석조불상, 귀부龜趺, 이수螭首 등이 남아 있다. 1963년 이곳에서 14세기에 제작된 청자와 청동사리합이 발견되었다. 청자는 매병 1점과 대접 2점, 접시 2점, 팔각접시 3점 등이며, 모두 상감기법으로 장식되었다. 엉성해진 그릇의 형태와 문양에서 퇴락해 가는 상감청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Goryeo Dynasty
새 풀꽃무늬 매병 새 풀꽃무늬 매병 청자상감영모초화문매병 ​​​​
靑磁象嵌翎毛草花文梅甁
Maebyeong(Plum bottle), Celadon with Inlaid Bird, Plant and Flower Design​
구름 봉황무늬 대접 구름 봉황무늬 대접 청자상감운봉문대접 ​ ​​​​
靑磁象嵌雲鳳文大楪​
Bowl, Celadon with Inlaid Cloud and Phoenix Design​​
국화무늬 접시 국화무늬 접시 청자상감국화문접시 ​​​​​​
靑磁象嵌菊花文楪匙​
Octagonal Dish, Celadon with Inlaid Chrysanthemum Design​
국화무늬 팔각접시 국화무늬 팔각접시 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 ​​​​​
靑磁象嵌菊花文八角楪匙​
Octagonal Dish, Celadon with Inlaid Chrysanthemum Design​​
국화무늬 접시 국화무늬 접시 청자상감국화문접시 ​​​​​​
靑磁象嵌菊花文楪匙​
Octagonal Dish, Celadon with Inlaid Chrysanthemum Design​
4부 도자기 속에 담긴 조선인의 삶​조선

분청사기에서 왕실 도자기까지 조선의 도자기를 만나보세요​

지역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

조선시대 분청사기 중에는 그것을 만든 도공이나 생산지, 사용 관청 등의 이름이나 공물 표시 등을 새긴 것이 있다. 사용 관청의 이름이나 공물 표시 등을 새긴 것이 있다. 사용 관청의 이름을 표시한 것은 그릇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도공이나 생산지의 이름을 새긴 것은 그릇 품질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특히 경상도 지역에는 생산지로 보이는 진주, 삼가, 밀양과 같은 지역 이름이 새겨진 분청사기가 많이 남아 있다.​

Joseon Dynasty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 분청사기인화문진주장명대접 ​​​​
粉靑沙器印花文晉州長銘大楪
조선, 15세기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의 문양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의 문양 분청사기인화문진주장명대접 ​​​​
粉靑沙器印花文晉州長銘大楪
조선, 15세기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의 문양 ‘진주’와 ‘장’이 새겨진 대접의 문양 분청사기인화문진주장명대접 ​​​​
粉靑沙器印花文晉州長銘大楪
조선, 15세기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 분청사기인화문합천장흥고명호 ​ ​​​​
粉靑沙器印花文陜川長興庫銘壺​
조선, 15세기​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의 문양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의 문양 분청사기인화문합천장흥고명호 ​ ​​​​
粉靑沙器印花文陜川長興庫銘壺​
조선, 15세기​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의 문양 ‘합천’과 ‘장흥고’가 새겨진 항아리의 문양 분청사기인화문합천장흥고명호 ​ ​​​​
粉靑沙器印花文陜川長興庫銘壺​
조선, 15세기​
숭수아기씨의 태를 묻은 기록과 태를 담은 항아리​​

중종의 아들이었던 덕양군(1524~1581)의 태를 담은 항아리와 그 기록(태지석)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그 태를 항아리에 담고, 항아리 안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기록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이러한 행위는 '안태(安胎) 혹은 '장태((藏胎)'라고 불리었는데, 새로 태어난 아기씨 앞날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고, 더 나아가 나라의 번영을 기원을 마음을 담은 조선왕실의 독특한 출산문화로 이해된다.​ ​

Joseon Dynasty
숭수아기씨의 태를 담은 항아리 숭수아기씨의 태를 담은 항아리 경남 의령군 칠곡면 ​​​​
조선, 1524년
Joseon Dynasty, 1524
숭수아기씨의 태를 묻은 기록 숭수아기씨의 태를 묻은 기록 경남 의령군 칠곡면 ​​​​
조선, 1524년
Joseon Dynasty, 1524
태를 묻은 기록의 내용 1524년(중종19) 9월 25일 해시에 출생한 왕자 숭수아기씨의 태를 1528년(중종23) 3월 13일 자시에 묻음 ​​​​
皇明嘉靖三年九月二十五日亥時生 王男崇壽阿只氏胎 嘉靖七年三月十三日子時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