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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실은 경남 사천 출신의 재일교포 사업가
두암 김용두(1922~2003)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선생은 일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여 국립진주박물관에 190점을 기증하였습니다.
문화재 환수와 기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고故 두암 김용두 선생은 혼란한 시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고귀한 뜻을 담아 고향인 사천과 가까운 국립진주박물관에 1997, 2000, 2001년 세 차례에 걸쳐 기증하셨습니다.
평생 모은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기증한 나도 기쁘지만, 수십수백 년 동안 떠돌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이 문화재들은 얼마나 감격이 크겠는가?’ 라고 남긴 말씀에서 두암 선생의 고국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두암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회화, 글씨, 공예품 등 시기가 광범위하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특히,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명품들이 포함되어 있어 주목됩니다.
두암 김용두(1922~2003) 선생이 기증한 190점의 유물 중 몇 가지 유물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물관에 방문하시면 더 많은 유물을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 초에 유행한 소상팔경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상팔경도란 중국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 남쪽 샤오수瀟水와 샹강湘江이 합류하는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그린 여덟 그림을 말한다.
여덟 폭의 그림이 두 폭씩 마주보는 구도로 좌우에 한쪽으로 치우친 산이나 절벽이 무게 중심을 이루고 있다. 봄을 표현한 산시청람으로 시작해서 연사모종, 어촌석조, 원포귀범, 소상야우, 동정추월, 평사낙안, 그리고 겨울 장면인 강천모설로 끝난다. 모든 주제를 갖춘 원형의 작품이면서, 16세기 전형적인 안견파 화풍을 보여 회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래 작품을 마우스로 클릭시 큰 이미지와 함께 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봄날 아침 성城과 산마을(山市)이 아지랑이 속에 싸여있는 광경이다. 화면 아래에는 물가의 정자, 솟아오른 언덕과 그 위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이러한 표현은 조선 초기 이곽파李郭派* 계통의 산수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소재이다. 화면 중간에는 한 인물이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걷고 있고 반대편 언덕과 연결되어 있는 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도 두 인물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 이곽파(李郭派)다른 소상팔경도 연사모종의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인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다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일을 마치고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주인과 이를 맞이하는 강아지가 왼편에 표현되었다. 화면 아래 언덕에는 두 그루 소나무와 잡목이 자라고 있다. 화면 중간 부분에서 시작되는 산은 S자형으로 상단 부분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에 산사의 종루鐘樓와 폭포가 눈에 띈다. 풍경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조선 초기 이곽파의 그림 양식과는 다른 경향이 나타난다.
강에는 물가에 쳐 놓은 그물과 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 아래에는 언덕, 나무, 어촌의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로 지붕만 보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산 너머에 해가 진 뒤 황혼이 지는 시적詩的인 분위기 묘사가 돋보인다.
화면 아래에서 윗부분의 산 건너편까지 무한히 이어지는 광활한 수면과 꼭대기에 누각이 있는 작은 섬을 끼고 멀리서 돌아오는 배들이 떠 있다. 그 아래로 솟은 언덕과 그 위의 두 그루 소나무는 이곽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사선방향으로 몰아치는 비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쏠려있는 나무와 갈대들이 음습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탕을 약간 어둡게 하고 화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몰아치는 비바람 부분은 바탕색을 그대로 남겨두어 바람이 심한 밤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 장면은 대개 동정추월洞庭秋月 그림 앞에 배치되어 초가을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쓸쓸하고 처량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배경삼아 한밤 중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고 있다. 화면 아래 언덕에는 나무와 정자가 있고, 그 위 언덕에는 울타리 안에 두 채의 가옥이 그려져 있다. 비스듬히 솟아오른 언덕과 산은 화면 위로 올라가면서 겹쳐지고 높아지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동정추월 주제의 핵심인 둥근 달은 화면 오른쪽 위에 그려져 있다.
화면의 위에는 평평한 모래펄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잎이 떨어진 나무, 스산한 분위기가 늦가을의 쓸쓸함을 고조시킨다. 화면 아래 나지막한 언덕에는 울타리를 두른 집이 있고, 언덕 뒤편에는 중층의 누각이 보인다. 그 위 언덕에도 누각이 한 채 서 있고 한 인물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화면 위에는 무리지어 날거나 모래펄에 날아드는 기러기가 간략한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경치로 삭막한 겨울 모습과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화면 아래에는 도롱이를 입은 인물 두 명이 걸어가고 있다. 강한 필치로 날카로운 선을 사용하였고, 먹은 짙으며 풍경의 형태도 각이 지고 예리하여 만물이 움츠러든 겨울의 풍치를 느끼게 한다. 산줄기가 왼편 위에서 오른편 아래로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화면을 양분하여 탁 트인 공간을 중시하는 다른 화면들과 큰 대조를 보인다.
정조는 조선 제22대 임금으로 25년 간(1776~1800) 재위在位하며 커다란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이 시는 1791년 2월 정민시鄭民始(1745~1800)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赴任할 때 손수 짓고 써서 준 것으로 왕의 자상한 마음을 담고 있다.
欵欵離筵酒屢巡 정성스레 마련한 연회 여러 차례 이별의 술잔 오가고
送君明日出銅津 내일에는 그대 전송하러 동작진 나루터로 나가겠지
卽今盤錯須民部 복잡한 일이야 여럿이지만 지금은 오직 백성을 보살펴야하니
從古旬宣仗近臣 예부터 지방 순시의 임무는 가까운 신하에게 맡겨왔다네
裘帶爭瞻新刺史 관복입고 부임한 새 관찰사 알현하러 사람들이 몰려오겠지
起居無恙大夫人 그대 모친 사시는데도 불편함 없어야 할 텐데 ……
樓名拱北良非偶 누대의 이름이 ‘공북문’ 임은 그저 우연이 아닐지니
幾夜登樓望北宸 밤마다 누대에 올라 북쪽 대궐을 바라보겠지
辛亥仲春一日 1791년 2월 1일
贐靜窩出按湖南 전라도 관찰사로 떠나는 정와(정민시)를 전별하며
김익주는 18세기 말에 태어나 19세기에 활약한 화가이다. 오세창(1864~1953)은 「근역서화집」에서 김익주를 산수山水에 뛰어났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산수첩은 현재 낱장들로 전하는데 초충 4점, 영모 4점, 어해 2점, 산수 1점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중 매화나무 가지에서 잠자는 새그림(梅上宿鳥)에 있는 묵서墨書로 1850년에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1984년 개관 이후 지금까지 50여명 3,400여점 문화재 기증
최초 문화재 기증자1984년 박물관 개관 당시 최규진 선생이 11점을 기증하였다.
이 중 도기 바퀴장식 뿔잔은(보물 제 637호) 진주 1번으로 등록되어 국립진주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다.
2006년 박낙곤 선생이 1,393점 기증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박진영 장군과 밀양박씨 영동정공파 집안의 문화재이다.
고문서가 대부분으로 왕명 관련 문서, 임명장류, 호적 문서 등이 있으며, 14미터에 달하는 화회문기도 있다.
2003, 2004년 심재온 선생은 조선 후기 목활자 및 고서적 729점을 기증하였다.
청송 심씨 문중 소장의 활자 용구와 서적으로, 조선후기 지방의 유학자들이 활발하게 개인 문집을 간행하였음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조선시대 인쇄문화에 대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