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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진주박물관 관람시간
  • 09:00 - 18:00
  • 휴관

    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설·추석 당일

Jinju Museum

JINJU NATIONAL MUSEUM

전시

[화력조선 시네마] "정주성" 1811년 홍경래의 난 최후의 전투 - 제4부 : 굴토

작성자국립진주박물관 등록일2024.02.26 조회수45

홍경래의 난 당시의 기록에는 식량이 떨어진 홍경래 군이 춤과 음악으로 사기를 끌어 올리려 노력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적 무리는 3월 22일에 패배를 겪었으니 기가 꺾이고 풀이 죽은 모습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요즘 예전처럼 억세고 고집스러우며, 심지어 기생을 끼고 음악을 연주하고, 성을 순찰하면서 총을 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이것은 비록 허세를 부리는 듯하지만 마치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진중일기』, 1812년 3월 28일 기록 남산의 진영에서 보고하기를 성안의 적도들이 깃발과 북을 크게 벌려놓고 앞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뒤에서는 에워쌌는데, 쌍쌍의 예쁜 기생들이 말을 타고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풍악을 길게 울리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천천히 성을 돌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서정일기』, 1812년 3월 25일의 기록 "적의 식량이 이미 떨어졌고 도망쳐 흩어진 자는 셀 수 없었는데...(중략)...적들은 서장대에 모여서 매일 음악을 연주했다." 『진중일기』, 1812년 4월 5일 기록 ◈함께 보면 이로운 정주성 전투 기록 ④ 그 밖에도 홍경래 군은 성안 민심을 달래기 위해 청나라에서 구원군이 올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려서 병사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도망친 적이 진술한 내용에 '적은 누룩 2개 쌀 2되를 3일 치 식량으로 하였고 '호병'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연달아 유혹하였습니다' 하였다." 『진중일기』, 1812년 3월 26일 기록 영상의 내용은 해당 기록을 축약,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