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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

진주박물관 관람시간
  • 09:00 - 18:00
  • 휴관

    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설·추석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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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참여

보도자료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개최

작성자학예연구실 등록일2015.09.15 조회수1019

국립진주박물관(관장대리 임학종)은 9월 22일(화)부터 11월 22일(일)까지 두암관에서 특별전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조선시대 서부경남 지역 출신 대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과 그의 제자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1536-1623)의 생애와 사상을 보여주는 전시로, 조식의 경의사상敬義思想을 요약 정리한 신명사도神明舍圖를 비롯하여 200여 점을 전시한다. 특히, 신명사도, 조식 필 간찰曺植筆簡札, 정인홍 필 간찰鄭仁弘筆簡札(보물 제1334-2호) 등 중요 유물이 최초로 공개된다.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은 조선중기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들의 학문은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받았고, 사후에도 서부경남 지역의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철저한 자기 수양自己修養을 바탕으로 ‘의義’를 실천한 스승 조식의 사상은 제자 정인홍을 비롯한 ‘남명학파南冥學派’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인조仁祖가 집권한 뒤 정치적으로 몰락하여 학문적 전통마저도 거의 끊어질 정도였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그동안 학계가 이룬 성과를 반영하여 조식과 정인홍의 학문적 삶에 관련된 유물을 모아 조명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남명 조식은 학문적 수양과 실천에 투철한 조선중기 최고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조정朝廷의 옳지 않은 정치에는 목숨을 걸고 비판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 주어진 관직을 마다하고 평생 학자로 남아 당대 사림士林의 큰 추앙을 받았다. 그는 경敬과 의義로 대표되는 독특한 학문 체계를 세워 ‘남명학파南冥學派’라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고, 학문적으로 뛰어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제자들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맞아 서부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국란 극복의 밑돌을 놓았다. 이는 조식이 평소 강조한 실천적인 학문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내암 정인홍은 스승 조식의 학문적 방향을 가장 충실하게 따랐다. 그는 스승의 문하에서 학문을 갈고 닦아 올바른 정치로 새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선조대 초반에 벼슬길에 올랐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재임 시절, 군 지휘관·수령 등 관료의 감찰을 엄격하게 처리하는 등 만연해 있던 부정부패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7세의 나이로 서부 경남 지역에서 곽재우에 이어 의병을 일으켰다. 그의 의병 궐기는 조식의 대표적인 제자로서 서부 경남 지역 사림士林의 총궐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정인홍은 국정의 중요한 문제에 원로로서 자문을 하였다. 그러나 인조 집권 이후, 광해군대의 정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대한제국기(광무 10년, 1906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영의정으로 정치적 지위가 회복되면서 그의 삶과 학문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식과 정인홍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유물을 한 데 모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조선중기 양반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서부 경남 지역의 지적 전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가 학문에 치열하게 정진하고 나라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선 지식인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붙임: 특별전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 관련 포스터 및 주요 유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