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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JU NATIONAL MUSEUM
소식·참여□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진화수)은 4월 23일(화)부터 6월 2일(일)까지 불기 2557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특별전시『부처님 오시다』전을 개최한다.
□ 이번 전시에는 온화한 얼굴 표현과 눈을 가늘게 뜨고 명상하는 모습의 목조여래좌상木造如來坐像 두 점과,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명복을 빌고 왕생극락을 기원하기 위해 1397년(태조 6)에 제작된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靑銅銀入絲靑谷社銘香垸이 전시된다.
□ 목조여래좌상은 크기와 양식이 거의 동일한 작품으로 동시기에 제작된 삼존불三尊佛 가운데 좌우의 협시불로 추정되며 손모양만 반대로 되어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에 비해 불신佛身과 불두佛頭가 크고, 얼굴은 약간 앞으로 숙여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두꺼운 대의大衣의 주름이 간략하게 처리되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었으며, 양손은 몸체에 비해 작게 묘사되어 있다.
□ 향완은 부처님께 향을 피워 공양할 때 쓰는 것으로, 이 향완은 만든 경위와 연대가 분명하고 화려한 은입사 문양이 뛰어난 명품이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大明洪武三十年丁丑朝鮮國開國 祖聖朝 中宮神德王后本鄕晉陽大都護府裨補禪刹靑谷社普光殿香垸敬造 靑谷重刱比丘尙聰全爲百分常住僧堂所大藏印成常轉法輪廣度衆生 同願駕洛府院君金師幸贊成事金溱 入絲金信剛 靑銅夫金
대명大明 홍무洪武 30년 정축丁丑(태조 6, 1397) 조선국朝鮮國 개국조開國祖 성조聖朝의 중궁中宮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본향本鄕인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 비보선찰裨補禪刹* 청곡사靑谷社** 보광전普光殿 향완香垸을 공경히 만들었다.
청곡사靑谷社를 중창한 비구比丘 상총尙聰***이 온전히 온갖 일을 분별하여 승려들이 항상 거주하는 승당僧堂에 (향완을) 성대하게 간직하게 하였으니, 언제나 법륜法輪을 굴리어 중생衆生을 널리 구제할 것이다.
동원同願(함께 발원한 사람) 가락부원군駕洛府院君 김사행金師幸****
문하시중찬성사門下侍中贊成事 김주金溱
입사入絲 김신강金信剛 청동靑銅 부금夫金
* 비보선찰裨補禪刹 나라의 부족한 기운을 북돋우고 보완해 주는 사찰
**청곡사靑谷社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절 이름에 寺를 社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사찰에 결사結社 조직이 있음에서 비롯되었다.
***비구比丘 상총尙聰 보우普愚의 제자이며, 신덕왕후가 승하한 뒤 왕후의 능인 정릉
貞陵의 원찰願刹인 흥천사興天寺를 조성할 때 감독을 맡았다.
****김사행金師幸 환관으로 태조의 총애를 받아 한양 왕궁과 성곽, 능묘 등의 공사를 지휘하였다. 김주金溱 역시 한양 새 수도 경영에 참여하였으며, 흥천사 공사를 감독하였다.
□ 이 향완이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신덕왕후의 본향은 곡산강씨谷山康氏임에도 명문의 내용대로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잘못 알고 만든 것이고, 그 연유로 진주 청곡사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이 오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발견된다. 태조실록에서는 분명히 곡산강씨谷山康氏로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향완과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진주는 신덕왕후 어머니의 본향이다.
□ 이 향완은 금년 6월부터 『한국문화재 터키전』전시에 출품될 예정으로 우리 박물관에서는 5월 26일까지만 전시된다.
□ 이번 특별전을 통해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아름다움과 수준 높은 조형미를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향완을 통하여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에 얽혀 있는 조선 개국 초기의 역사적 긴박함뿐만 아니라 명문에 나오는 비구比丘 상총尙聰과 김사행金師幸 등에 대한 역사적 사실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